
파도는 나를 삼키지 못했다
Description
책소개
구두닦이, 연탄과 신문배달, 막노동을 하며 야간고교 진학.
그리고 결핵 투병을 극복, 은행원으로 출발한 사회생활, 한 번도 좌절하지 않았던 그가 어떻게 기업을 크게 일구고, 기부천사의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되었는가를 들려주는 감동적인 인간승리 분투기이자 휴먼스토리.
마치 부산의 가장 빈민가였던 그의 고향 감천동이 지금 한국의 산토리니, ‘감천문화마을’로 거듭나 세계 유수 언론의 주목을 받는 K-관광의 중심지가 되었듯이.
윤종운에 쏠린 시선들…
인생에 들이닥치는 크고 작은 파도일 것이다.
내 인생에 밀려온 파도는 나의 모습을 깎아놓았을지언정 삼키지는 못했다.
거센 파도와 모진 바람 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으려 몸부림치던 그 시간이 오늘의 내 모습을 만들었다.
이 책은 그 자취를 가슴으로 풀어낸 기록이다.
고단한 세월 동안 나를 지탱해준 이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 책을 내면서
그리고 결핵 투병을 극복, 은행원으로 출발한 사회생활, 한 번도 좌절하지 않았던 그가 어떻게 기업을 크게 일구고, 기부천사의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되었는가를 들려주는 감동적인 인간승리 분투기이자 휴먼스토리.
마치 부산의 가장 빈민가였던 그의 고향 감천동이 지금 한국의 산토리니, ‘감천문화마을’로 거듭나 세계 유수 언론의 주목을 받는 K-관광의 중심지가 되었듯이.
윤종운에 쏠린 시선들…
인생에 들이닥치는 크고 작은 파도일 것이다.
내 인생에 밀려온 파도는 나의 모습을 깎아놓았을지언정 삼키지는 못했다.
거센 파도와 모진 바람 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으려 몸부림치던 그 시간이 오늘의 내 모습을 만들었다.
이 책은 그 자취를 가슴으로 풀어낸 기록이다.
고단한 세월 동안 나를 지탱해준 이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 책을 내면서
목차
책을 내면서
1부 유년기/ 빛바랜 추억의 조각들
1.
시간이 내려앉은 마을
2.
팔자 위를 걷는 법
3.
굽은 다리, 곧은 사람
4.
가난은 금을 타고 들어왔다
5.
빵 한 덩이에 담긴 마음
6.
해발 구천 미터 위에서
7.
추억보다 배부른 건 없다
8.
세상에 없는 아이
9.
거울 저편의 누님들
10.
벌레 먹은 잎의 사랑
2부 사춘기/ 가난의 늪에서
1.
흰 고무신과 까만 운동화
2.
봄을 기다리는 아이
3.
행복은 아주 작은 것들로부터
4.
가난이라는 죄목
5.
볕이 머문 자리
6.
구두닦이 소년
7.
젖은 신발을 신고
8.
그날, 바람이 불었다
9.
푸름은 남는다
10.
평범의 비범함
3부 청년기/ 생의 한복판
1.
암순응暗順應
2.
기적은 두 발로부터
3.
코스모스 그녀
4.
우리
5.
그럼에도 불구하고
6.
“운이 좋았습니다”
7.
봉투 속의 마음
8.
당신의 작은 손을 잡고
9.
삶, 그 간절함
10.
본전 인생
4부 중년기/ 바람에 버텨서다.
1.
오래달리기
2.
갈대는 바람을 품고 산다
3.
구방심求放心
4.
“만다꼬”
5.
젖은 낙엽
6.
맞바람의 힘
7.
다시, 시작
8.
‘욕심’과 ‘본심’
9.
그들의 신발을 신고
10.
뿌리의 마음
1부 유년기/ 빛바랜 추억의 조각들
1.
시간이 내려앉은 마을
2.
팔자 위를 걷는 법
3.
굽은 다리, 곧은 사람
4.
가난은 금을 타고 들어왔다
5.
빵 한 덩이에 담긴 마음
6.
해발 구천 미터 위에서
7.
추억보다 배부른 건 없다
8.
세상에 없는 아이
9.
거울 저편의 누님들
10.
벌레 먹은 잎의 사랑
2부 사춘기/ 가난의 늪에서
1.
흰 고무신과 까만 운동화
2.
봄을 기다리는 아이
3.
행복은 아주 작은 것들로부터
4.
가난이라는 죄목
5.
볕이 머문 자리
6.
구두닦이 소년
7.
젖은 신발을 신고
8.
그날, 바람이 불었다
9.
푸름은 남는다
10.
평범의 비범함
3부 청년기/ 생의 한복판
1.
암순응暗順應
2.
기적은 두 발로부터
3.
코스모스 그녀
4.
우리
5.
그럼에도 불구하고
6.
“운이 좋았습니다”
7.
봉투 속의 마음
8.
당신의 작은 손을 잡고
9.
삶, 그 간절함
10.
본전 인생
4부 중년기/ 바람에 버텨서다.
1.
오래달리기
2.
갈대는 바람을 품고 산다
3.
구방심求放心
4.
“만다꼬”
5.
젖은 낙엽
6.
맞바람의 힘
7.
다시, 시작
8.
‘욕심’과 ‘본심’
9.
그들의 신발을 신고
10.
뿌리의 마음
책 속으로
부산 서구 암남동.
송도 앞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소년의 집’은 축구부와 오케스트라 활동으로 잘 알려진 아동·청소년 보육기관이다.
동시에 암남동은 ‘마리아수녀회’가 창설된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곳은 한국 복지의 발원지로도 평가된다.
1957년, 전쟁의 포화가 멈춘 후 폐허가 된 한국 땅에 한 미국인 신부가 발을 디뎠다.
알로이시오 슈월츠, 그가 본 한국의 모습은 참혹했다.
거리에는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넘쳐났고, 사람들은 굶주림에 허덕였다.
부산교구 소속 신부가 된 그는 적극적으로 빈민 구제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고, 그 중심지 가운데 하나가 암남동이었다.
--- p.28
그 이후로 나는 더울 때나 추울 때나 마을 어귀로 나가 어머니를 기다렸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 무렵이면 골목 끝에 서서 먼 길을 응시했다.
조금 더 정직하게 말하자면, 어머니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품속에 넣어 오실지 모를 빵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가서는 어머니의 걸음걸이나 표정만 봐도 빵이 있을지, 없을지를 점칠 수 있었다.
자식에게 내어줄 것이 있을 때, 어머니의 표정은 한결 산뜻했고 발걸음 역시 가뿐했다
--- p.31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고개의 이름은 뭘까.
문학적 표현을 빌리자면 답은 ‘맥령麥嶺’이다.
흔히 ‘보릿고개’라 불린다.
원로시인 황금찬 선생은 [보릿고개]를 이렇게 읊었다.
에베레스트는 아시아의 산이다/ 몽불랑은 유럽/ 와스카라는 아메리카의 것/ 아프리카엔 킬리만자로가 있다/ 이 산들은 거리가 멀다/ 우리는 누구도 뼈를 묻지 않았다/ 그런데 코리아의 보릿고개는 높다./ 한없이 높아서 많은 사람이 울며 갔다가 굶으며 넘었다/ 얼마나 한 사람은 죽어서 못 넘었다./ 코리아의 보릿고개/ 안 넘을 수 없는 운명의 해발 구천 미터…
시인은 보릿고개를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보다 높은 해발 구천 미터로 표현했다.
넘다가 죽은 사람도 많은 그 고개는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거친 이 땅에 분명히 존재했던 무형의 고개다.
춘궁기春窮期라고도 불린 그 고개를 넘기 위해 사람들은 초근목피로 연명하고, 학교에서는 허기진 배를 물로 채우는 학생들이 많았다.
소화가 안 되는 풀뿌리, 나무껍질로 배를 채우다 보니 심각한 변비에 시달리는 일도 다반사였다.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라는 말은 보릿고개 때 심한 변비로 항문이 찢어져 피가 날 정도로 고생하던 데서 비롯된 말이다
--- p.34
집에 도착하자 어머니가 문 앞에 서 계셨다.
빈 도시락통을 본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그날 저녁은 역시 굶어야 했다.
당연히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감사했다.
점심에 그렇게 맛있는 걸 먹었는데, 저녁까지 바라는 건 염치가 없었다.
나는 그날 잠들기 전까지도 볼이 발개진 채 기쁨에 상기되어 있었다.
내 인생 최초의 행복이었다.
--- p.45
나와 여섯 살 터울의 큰 누나와 세 살 터울의 작은 누나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동시에 살림까지 도맡아야 했던 어머니의 생활력을 그대로 물려받은 인물들이었다.
비단 우리 집 경우만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가족의 생존을 위한 여성들의 저력이 대단했다.
어린 소녀도 목판을 걸고 시장을 누볐고, 젊은 엄마는 젖먹이를 안고 시장으로 나왔다.
‘시장에 가면 전부 여인네뿐’이라는 말이 어떤 날은 새빨간 코피까지 쏟았다.
깜짝 놀란 나는 허둥지둥 물수건을 찾아와 큰 누나의 코 아래 대어주며 훌쩍거렸다.
--- p.58
누나들의 땀과 피로 얼룩진 이만 원 남짓의 돈.
지금 기준으로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액수지만 당시에는 무척이나 귀한 돈이 없다.
누나들이 월급을 타는 날에는 쌀 한 가마니가 부엌 한쪽에 놓여 있기도 했다.
쌀! 강냉이죽이 아닌, 진짜 쌀! 보석처럼 하얀 쌀알들이 가득 찬 가마니.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했다.
당분간은 밥을 먹을 수 있었다.
--- p.60
연탄 한 장을 배달하면 2원.
나는 그날 총 백 장을 배달하고 이백 원을 벌었다.
열한 살, 처음으로 내가 번 돈이었다.
나는 그 돈을 꼭 쥐고 시장으로 갔다.
이 돈을 가지고 무얼 사야 할까? 가는 동안 수없이 고민했다.
그다지 넉넉한 돈은 아니니 최대한 양이 많고 값싼 음식을 골라야 했다.
고민 끝에 생각해낸 건 콩비지였다.
두부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
두부보다 값이 저렴하고 맛도 기가 막혔다.
무엇보다 가족이 다 함께 나눠 먹을 수 있었다.
이백원으로 콩비지 네 덩이를 샀다.
양손 가득 무거웠다.
정말로 기분 좋은 무게였다.
--- p.74
한 집, 두 집, 세 집, 열 집, 스무 집….
추위를 잊기 위해 부러 더 힘차게 뛰었다.
바위가 든 듯 둔중했던 자루가 점점 가벼워지기 시작하면 마음도 덩달아 가뿐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리는 그와 반대로 점점 무거워졌다.
숱한 계단을 오르내리느라 다리가 후들거리고 종아리가 쑤셨다.
고무신 밑창이 얇아서인지 지압판 위에 선 것처럼 바닥의 요철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비나 눈이 오는 날이면 몇 배는 고달팠다.
신문이 젖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일일이 비닐로 싸둬야 했고 그 과정이 상 새벽 4시면 눈을 떠야 했다.
--- p.91
신문 배달을 마치면 곧장 학교로 갔다.
보급소에서 학교까지의 거리도 걸어서 한 시간 이상은 소요됐다.
학교에 도착하면 밀려오는 갈증과 허기에 곧장 수돗가로 갔다.
수도꼭지 아래 고개를 숙이고 빈속에 얼음장같이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이가 시렸다.
뱃속이 차가워지며 몸이 부르르 떨렸다.
피로가 좀 가시는 것 같기도 했다.
움직일 때마다 속에서 물이 찰랑찰랑 춤을 췄다.
--- p.92
학교는 월사금을 받아 내기 위해 무엇이든 했다.
그것이 한 인간의 인권을 탄압하고 사춘기 아이의 자아를 짓밟아, 그 속에 어떤 트라우마를 남길지 모르는 형태였음에도 전혀 괘념치 않았다.
몽둥이로 흠씬 두들겨 맞은 허벅지는 피멍이 들어 보랏빛이 돌았고, 뺨의 실핏줄이 다 터질 정도로 따귀를 맞았다.
출석부로 귀가 먹먹해질 때까지 사정없이 후려 맞고, 대나무 회초리로 피가 보일 때까지 손바닥을 맞았다.
그렇게 맞고, 맞고, 맞고, 또 맞고….
--- p.108
나는 은행원들의 구두를 닦으며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귀동냥했다.
집값 이야기, 경제 이야기, 교육 이야기, 정치 이야기….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로 통하는 작은 창문 같았다.
만듦새가 훌륭한 구두, 윤기가 흐르는 양복, 강렬한 스킨로션 향기, 손목에서 번쩍이는 시계….
나는 그런 것들을 은근슬쩍 훔쳐보며, ‘이 사람들은 한 달에 얼마나 많은 돈을 벌까?’ 호기심을 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작디작았던 호기심이 갈수록 바람 넣은 풍선처럼 몸집을 부풀리기 시작했고, 그것은 이내 '뻥' 하고 터져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 p.147
밤 11시, 수업이 끝나고 교문을 나서면 또다시 긴 복습의 시간이 시작됐다.
매일 같은 하루의 반복이었다.
새벽 내 시에 일어나 신문 배달, 아침부터 오후 네다섯 시까지는 구두닦이, 여섯 시 반부터 11시까지는 학교 수업, 그리고 자정이 지난 시간까지 복습.
시간 자고 새벽 내 시에 일어나 신문 배달….
매일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세 시간밖에 잘 수 없으니 체력적으로는 참 고달팠다.
가끔 비틀거렸고, 눈앞이 아득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계단을 오르다 휘청거리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오로지 정신력 하나로 버텼다.
절박했다.
공부하는 것이 나에게 찾아온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랐다.
그 절박함이 나를 신문 보급소로, 구두통 앞으로, 학교로 이끌었다.
--- p.171
그렇게 치열한 6개월이 흘렀다.
180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다.
2학기의 첫 시험이 끝난 지 일주일 만에 성적표가 나왔다.
그 속에 적힌 전교 석차는 5.
전교 5등이었다.
이전 학기에 본 시험이 650명 중 640등….
기적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의 변화였다.
--- p.174
며칠을 고민한 끝에 나는 공사장에 나가기 시작했다.
흔히 ‘노운運, 그것은 보통 ‘그 결과가 미리 정해져 있어 사람의 힘으로는 바꿀 수 없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운運이라는 한자는, ‘옮기다’, ‘움직이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즉, 운이란 영영 멈춰있거나 고정된 것이 아니라, 내가 움직일 수도, 스스로 옮길 수도 있는 것이다.
‘노가다’라고 불리는 막일이었다.
송도 앞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소년의 집’은 축구부와 오케스트라 활동으로 잘 알려진 아동·청소년 보육기관이다.
동시에 암남동은 ‘마리아수녀회’가 창설된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곳은 한국 복지의 발원지로도 평가된다.
1957년, 전쟁의 포화가 멈춘 후 폐허가 된 한국 땅에 한 미국인 신부가 발을 디뎠다.
알로이시오 슈월츠, 그가 본 한국의 모습은 참혹했다.
거리에는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넘쳐났고, 사람들은 굶주림에 허덕였다.
부산교구 소속 신부가 된 그는 적극적으로 빈민 구제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고, 그 중심지 가운데 하나가 암남동이었다.
--- p.28
그 이후로 나는 더울 때나 추울 때나 마을 어귀로 나가 어머니를 기다렸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 무렵이면 골목 끝에 서서 먼 길을 응시했다.
조금 더 정직하게 말하자면, 어머니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품속에 넣어 오실지 모를 빵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가서는 어머니의 걸음걸이나 표정만 봐도 빵이 있을지, 없을지를 점칠 수 있었다.
자식에게 내어줄 것이 있을 때, 어머니의 표정은 한결 산뜻했고 발걸음 역시 가뿐했다
--- p.31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고개의 이름은 뭘까.
문학적 표현을 빌리자면 답은 ‘맥령麥嶺’이다.
흔히 ‘보릿고개’라 불린다.
원로시인 황금찬 선생은 [보릿고개]를 이렇게 읊었다.
에베레스트는 아시아의 산이다/ 몽불랑은 유럽/ 와스카라는 아메리카의 것/ 아프리카엔 킬리만자로가 있다/ 이 산들은 거리가 멀다/ 우리는 누구도 뼈를 묻지 않았다/ 그런데 코리아의 보릿고개는 높다./ 한없이 높아서 많은 사람이 울며 갔다가 굶으며 넘었다/ 얼마나 한 사람은 죽어서 못 넘었다./ 코리아의 보릿고개/ 안 넘을 수 없는 운명의 해발 구천 미터…
시인은 보릿고개를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보다 높은 해발 구천 미터로 표현했다.
넘다가 죽은 사람도 많은 그 고개는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거친 이 땅에 분명히 존재했던 무형의 고개다.
춘궁기春窮期라고도 불린 그 고개를 넘기 위해 사람들은 초근목피로 연명하고, 학교에서는 허기진 배를 물로 채우는 학생들이 많았다.
소화가 안 되는 풀뿌리, 나무껍질로 배를 채우다 보니 심각한 변비에 시달리는 일도 다반사였다.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라는 말은 보릿고개 때 심한 변비로 항문이 찢어져 피가 날 정도로 고생하던 데서 비롯된 말이다
--- p.34
집에 도착하자 어머니가 문 앞에 서 계셨다.
빈 도시락통을 본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그날 저녁은 역시 굶어야 했다.
당연히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감사했다.
점심에 그렇게 맛있는 걸 먹었는데, 저녁까지 바라는 건 염치가 없었다.
나는 그날 잠들기 전까지도 볼이 발개진 채 기쁨에 상기되어 있었다.
내 인생 최초의 행복이었다.
--- p.45
나와 여섯 살 터울의 큰 누나와 세 살 터울의 작은 누나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동시에 살림까지 도맡아야 했던 어머니의 생활력을 그대로 물려받은 인물들이었다.
비단 우리 집 경우만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가족의 생존을 위한 여성들의 저력이 대단했다.
어린 소녀도 목판을 걸고 시장을 누볐고, 젊은 엄마는 젖먹이를 안고 시장으로 나왔다.
‘시장에 가면 전부 여인네뿐’이라는 말이 어떤 날은 새빨간 코피까지 쏟았다.
깜짝 놀란 나는 허둥지둥 물수건을 찾아와 큰 누나의 코 아래 대어주며 훌쩍거렸다.
--- p.58
누나들의 땀과 피로 얼룩진 이만 원 남짓의 돈.
지금 기준으로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액수지만 당시에는 무척이나 귀한 돈이 없다.
누나들이 월급을 타는 날에는 쌀 한 가마니가 부엌 한쪽에 놓여 있기도 했다.
쌀! 강냉이죽이 아닌, 진짜 쌀! 보석처럼 하얀 쌀알들이 가득 찬 가마니.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했다.
당분간은 밥을 먹을 수 있었다.
--- p.60
연탄 한 장을 배달하면 2원.
나는 그날 총 백 장을 배달하고 이백 원을 벌었다.
열한 살, 처음으로 내가 번 돈이었다.
나는 그 돈을 꼭 쥐고 시장으로 갔다.
이 돈을 가지고 무얼 사야 할까? 가는 동안 수없이 고민했다.
그다지 넉넉한 돈은 아니니 최대한 양이 많고 값싼 음식을 골라야 했다.
고민 끝에 생각해낸 건 콩비지였다.
두부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
두부보다 값이 저렴하고 맛도 기가 막혔다.
무엇보다 가족이 다 함께 나눠 먹을 수 있었다.
이백원으로 콩비지 네 덩이를 샀다.
양손 가득 무거웠다.
정말로 기분 좋은 무게였다.
--- p.74
한 집, 두 집, 세 집, 열 집, 스무 집….
추위를 잊기 위해 부러 더 힘차게 뛰었다.
바위가 든 듯 둔중했던 자루가 점점 가벼워지기 시작하면 마음도 덩달아 가뿐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리는 그와 반대로 점점 무거워졌다.
숱한 계단을 오르내리느라 다리가 후들거리고 종아리가 쑤셨다.
고무신 밑창이 얇아서인지 지압판 위에 선 것처럼 바닥의 요철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비나 눈이 오는 날이면 몇 배는 고달팠다.
신문이 젖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일일이 비닐로 싸둬야 했고 그 과정이 상 새벽 4시면 눈을 떠야 했다.
--- p.91
신문 배달을 마치면 곧장 학교로 갔다.
보급소에서 학교까지의 거리도 걸어서 한 시간 이상은 소요됐다.
학교에 도착하면 밀려오는 갈증과 허기에 곧장 수돗가로 갔다.
수도꼭지 아래 고개를 숙이고 빈속에 얼음장같이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이가 시렸다.
뱃속이 차가워지며 몸이 부르르 떨렸다.
피로가 좀 가시는 것 같기도 했다.
움직일 때마다 속에서 물이 찰랑찰랑 춤을 췄다.
--- p.92
학교는 월사금을 받아 내기 위해 무엇이든 했다.
그것이 한 인간의 인권을 탄압하고 사춘기 아이의 자아를 짓밟아, 그 속에 어떤 트라우마를 남길지 모르는 형태였음에도 전혀 괘념치 않았다.
몽둥이로 흠씬 두들겨 맞은 허벅지는 피멍이 들어 보랏빛이 돌았고, 뺨의 실핏줄이 다 터질 정도로 따귀를 맞았다.
출석부로 귀가 먹먹해질 때까지 사정없이 후려 맞고, 대나무 회초리로 피가 보일 때까지 손바닥을 맞았다.
그렇게 맞고, 맞고, 맞고, 또 맞고….
--- p.108
나는 은행원들의 구두를 닦으며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귀동냥했다.
집값 이야기, 경제 이야기, 교육 이야기, 정치 이야기….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로 통하는 작은 창문 같았다.
만듦새가 훌륭한 구두, 윤기가 흐르는 양복, 강렬한 스킨로션 향기, 손목에서 번쩍이는 시계….
나는 그런 것들을 은근슬쩍 훔쳐보며, ‘이 사람들은 한 달에 얼마나 많은 돈을 벌까?’ 호기심을 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작디작았던 호기심이 갈수록 바람 넣은 풍선처럼 몸집을 부풀리기 시작했고, 그것은 이내 '뻥' 하고 터져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 p.147
밤 11시, 수업이 끝나고 교문을 나서면 또다시 긴 복습의 시간이 시작됐다.
매일 같은 하루의 반복이었다.
새벽 내 시에 일어나 신문 배달, 아침부터 오후 네다섯 시까지는 구두닦이, 여섯 시 반부터 11시까지는 학교 수업, 그리고 자정이 지난 시간까지 복습.
시간 자고 새벽 내 시에 일어나 신문 배달….
매일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세 시간밖에 잘 수 없으니 체력적으로는 참 고달팠다.
가끔 비틀거렸고, 눈앞이 아득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계단을 오르다 휘청거리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오로지 정신력 하나로 버텼다.
절박했다.
공부하는 것이 나에게 찾아온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랐다.
그 절박함이 나를 신문 보급소로, 구두통 앞으로, 학교로 이끌었다.
--- p.171
그렇게 치열한 6개월이 흘렀다.
180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다.
2학기의 첫 시험이 끝난 지 일주일 만에 성적표가 나왔다.
그 속에 적힌 전교 석차는 5.
전교 5등이었다.
이전 학기에 본 시험이 650명 중 640등….
기적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의 변화였다.
--- p.174
며칠을 고민한 끝에 나는 공사장에 나가기 시작했다.
흔히 ‘노운運, 그것은 보통 ‘그 결과가 미리 정해져 있어 사람의 힘으로는 바꿀 수 없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운運이라는 한자는, ‘옮기다’, ‘움직이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즉, 운이란 영영 멈춰있거나 고정된 것이 아니라, 내가 움직일 수도, 스스로 옮길 수도 있는 것이다.
‘노가다’라고 불리는 막일이었다.
--- p.189
출판사 리뷰
“대한민국의 근대미술사를 대표하는 1세대 화가인 이수억 화백은 붓으로 우리나라의 격동기를 기록했다.
특히 1952년 작 「구두닦이 소년」은 전쟁이 훑고 간 세상의 민낯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며 시대의 아픔을 그렸다.
이 작품을 보는 순간 나는 나의 옛 시절이 떠올랐다.
그 가엾은 아이의 심정이 고스란히 나에게로 왔다.
그 소년과의 확실한 공통분모는 내 가슴 속에 어떤 동질감이 피어오르게 했다.
그 공통분모는 가난, 그리고 ‘구두닦이’….”- 본문 중에서
특히 1952년 작 「구두닦이 소년」은 전쟁이 훑고 간 세상의 민낯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며 시대의 아픔을 그렸다.
이 작품을 보는 순간 나는 나의 옛 시절이 떠올랐다.
그 가엾은 아이의 심정이 고스란히 나에게로 왔다.
그 소년과의 확실한 공통분모는 내 가슴 속에 어떤 동질감이 피어오르게 했다.
그 공통분모는 가난, 그리고 ‘구두닦이’….”- 본문 중에서
GOODS SPECIFICS
- 발행일 : 2025년 11월 20일
- 쪽수, 무게, 크기 : 320쪽 | 152*223*30mm
- ISBN13 : 9791193096147
- ISBN10 : 1193096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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